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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철학 1편] 우리는 왜 타인을 배제하는가?
📢 혐오는 단순한 감정일까요,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일까요? 아래에서 함께 사유해봅니다.
2025년 현재, '혐오'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온라인 댓글, 사회 이슈, 정치적 담론 속에서 혐오는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개인의 감정 문제로 생각하지만, 철학은 질문합니다. “혐오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혐오, 감정인가 구조인가
혐오(hatred)는 두려움(fear), 분노(anger), 혐오감(disgust) 같은 감정의 복합체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혐오를 단순한 심리 상태가 아닌,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하나의 구조로 봅니다. 특히 미셸 푸코, 조르조 아감벤 같은 현대 철학자들은 혐오를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으로 해석합니다.
✅ 철학은 혐오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아래 글도 함께 확인해보세요.
👉 철학과 폭력 – 정의란 무엇인가?타자에 대한 불편함, 윤리의 시작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타자’와 마주하는 경험이 인간 윤리의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가 타인을 불편하게 느끼는 그 감정 자체가 단순한 거부감이 아니라, 윤리적 책임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반면 사회는 그 불편함을 제거하려고 하죠. 그것이 혐오의 시작입니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사회
혐오는 종종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감정은 소속감을 형성하고, 동시에 배제를 정당화합니다. 정치, 종교, 성별, 인종, 세대 등 다양한 기준에서 ‘그들’은 만들어지고, 구조적인 혐오가 발생합니다. 이 과정은 푸코가 말한 ‘규범 권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 더 깊이 있는 철학적 해석이 궁금하다면?
👉 레비나스: 타자를 마주한다는 것의 의미혐오를 사유한다는 것
혐오를 단지 나쁜 감정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왜 특정 존재에 불편함을 느끼는지, 사회는 왜 그 불편함을 ‘정상’이 아닌 것으로 규정하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철학은 감정의 이면을 해체하고, 그 속에 숨은 권력과 질서를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 다음 편 예고
2편 예고: 레비나스와 타자 – 불편한 존재를 마주할 용기
타자란 무엇이며, 왜 우리는 타자를 두려워하는가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시리즈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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