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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3. 24.

    by. 뿌듯한 하루

    목차

      1. 문학은 왜 ‘기억’에 집착하는가

      문학은 늘 ‘기억’과 닮아 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니다. 문학 속 기억은 일종의 구성된 과거, 때로는 왜곡되고, 때로는 과장되며, 때로는 전혀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이처럼 문학은 기억을 단순히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하는 매체이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며 기억을 사용하는 방식과도 비슷하다. 우리는 기억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지 않는다. 감정, 상황, 맥락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고, 지워지고, 다시 붙여넣는다. 마치 글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œur)**는 “기억은 언제나 해석의 여지를 품는다”고 말한다. 이는 곧 문학이 기억을 다룰 때 단순한 과거 재현이 아닌, 해석과 이야기 구성이라는 층위를 드러낸다는 뜻이다. 기억이 문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 기억을 빚어낸다는 말에 가까워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문학은 ‘기억의 실험실’이라 부를 수 있다. 작가는 한 인물의 기억을 구성하고, 독자는 그 기억을 따라가며 자신만의 기억을 다시 호출하게 된다.

       

       

      기억은 이야기의 나이테다: 문학과 기억의 철학

       

      2. ‘기억’은 인물의 정체성을 만든다

      문학에서 기억은 종종 인물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느낄 때, 사실은 그들의 ‘기억’—어떤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를 이해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문학 속 인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인물의 기억은 그의 성격, 행동, 신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맛보는 장면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다. 그 맛은 마르셀에게 온몸을 덮는 듯한 감각적 회상을 일으키고, 그를 곧장 유년기의 특정한 시간과 장소로 데려간다. 이처럼 감각과 기억은 서사를 촉발하는 장치로 작용하며, 마르셀이라는 인물이 ‘누구였는가’보다 ‘무엇을 기억하는가’에 의해 정의되기 시작한다.

      또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의 집사 스티븐스는 과거의 기억을 고르고 다듬으며 현재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삶을 구성한다. 그의 기억은 때때로 진실을 왜곡하지만, 바로 그 왜곡된 기억이야말로 그가 붙잡고 있는 정체성의 실마리다. 문학은 이렇게 말한다: 기억은 때때로 거짓이어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그것이 한 인물을 어떻게 ‘지탱’하느냐다.

       

       

      3. 기억의 단절과 왜곡은 어떻게 서사를 밀어붙이는가

      문학에서 기억은 종종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기억의 단절, 왜곡, 망각은 인물의 갈등을 만들어내고,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이며, 독자가 사유할 여지를 남긴다. 기억이 ‘정상적으로’ 흘러간다면 이야기는 평범해질 것이다. 하지만 문학은 그 틈과 어긋남을 붙잡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종종 자신의 과거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노르웨이의 숲』의 와타나베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나오코를 기억하며, 자신 또한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정체된 상태에 머문다. 그의 회상은 종종 왜곡되고, 때로는 감정적으로 과장되며, 독자로 하여금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하는 의심을 품게 한다.

      이런 불완전한 기억 구조는 서사의 퍼즐적 구조를 만들어낸다. 독자는 인물의 왜곡된 기억 틈새를 메우며 이야기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 문학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이 능동적 해석은 단지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서를 넘어, 기억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장치가 된다.

       

       

      4. 문학은 기억을 보존하는가, 혹은 변형하는가

      기억은 흔히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진다’고 여겨진다. 문학은 이 사라질 수 있는 기억을 붙잡는 도구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문학은 그 기억을 변형하는 예술이기도 하다. 작가의 기억은 픽션으로 바뀌고, 독자의 해석은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그러니 문학은 기억의 무덤이 아니라, 기억의 부활에 가깝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황제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기억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이 회상은 결코 완벽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앞둔 자가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에 더 가까운 기억이다. 문학은 이처럼 기억의 주관성을 긍정한다. ‘무엇이 진짜냐’보다 ‘어떻게 기억되었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결국 문학은 기억을 보존하기보다, 다시 쓰게 만든다. 독자는 작품을 읽으며 자신만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이야기로 만들어본다. 이것이 문학의 기억 작용이다. 문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기억은 단지 과거가 아니야. 너를 만든 현재야.”